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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8/08/30 시선
- 2008/08/30 우리안의 노블레스 오블리주(나와우리 칼럼)
- 2008/08/30 이렇게 아름다운 날이었나요?
- 2008/08/30 이해가 안가면 암기하세요
- 2008/08/29 돌아보고 기억하고 기록하시기 바랍니다.
- 2008/08/29 차라리 돌이 되시길 바랍니다.
- 2008/08/29 이라크에 세워질 증오비를 생각하십시오
시 선
저는 대학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대학에서 일한지는 9년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최근에 제게 변화가 생겼습니다.
변화는 바로 학교를 바라보는 시선이 바꿘것입니다.
무슨 거창한 철학이 담긴 이야기가 아닙니다.
단지 제가 그동안 일했던 공간(대학본부)이 아니라 완전히 다른 공간에서 일을 하고 있다는 뜻입니다. 지난 8년동안 한번도 바라 보지 못한 곳에서 학교를 바로 보고 있습니다.
이상하게도 이곳으로 이사 운 후 제게 학교는 완전히 다른 곳으로 보이고 있습니다. 그동안 있는 공간은 주로 대학원생들과 연구소들 사이에 있는 공간이었습니다. 저도 야근이 많지만 늘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연구소의 석박사 과정생들과 함께 있다 보니 늘 서로의 신세를 한탄하고 일을 많이 주는 교수님들의 뒷담화, 혹은 요즘 하는 일에 대한 이야기를 합니다. 하지만 이사온 지금 이곳은 학생들이 가장 많이 이동하는 공간이 정면으로 보이는 공간입니다. 또 사무실 아주 가까이 강의실이 있어서 학생들을 많이 만나고 그들이 하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습니다. 이곳에 오면서 느낀 대학은 생동감과 젊음이라는 두 단어로 압축될 만큼 이전에 느끼지 못했던 것을 느끼고 있습니다. 이사 후 이런 저런 생각을 해 보게 됩니다. 똑같은 대학이라는 공간에 있으면서 보는 위치에 따라 대학이 참 다르게 보이는 구나 하는 생각말입니다.
저는 요즘 새삼 이 시선이란 단어에 대해 골똘이 생각해 보게 됩니다.
시선이란 단어를 사전에서 찾아 봤습니다.
시선 [視線] [명사](네이버 국어사전)
1 눈이 가는 길. 또는 눈의 방향. ≒내자(內眥)·눈초리·목용·목자(目眥)·안제(眼眥).
2 주의 또는 관심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눈이 가는 길이라고 합니다. 또는 눈의 방향이라고 하고요.
요즘 우리 눈은 어디 가있는지 궁금합니다.
점입가경으로 가고 있는 정치권의 대선 가도에 가있나요? 아니면 맨체스터유니이티드에서 맹활약 중인 박지성 선수에게 가 있나요?
저는 우리 눈의 길 또 우리가 보는 방향이 인권으로 가 있었으면 합니다. 그리고 우리 안의 인권뿐만 아니라 전세계로 눈을 돌려 이곳 저곳으로 길을 냈으면 좋겠습니다.
지난주에 학교에서 행사를 했습니다. 웨스트파푸아에서 활동하는 활동가 분이 오셨습니다. 그 분과 함께 활동하는 한국활동단체에서 만든 피켓에 이런 문구가 있었습니다.“저는 국기(웨스트파푸아)를 게양했다는 이유로 15년 형을 선고 받았습니다. 국제앰네스티에서 저를 양심수로 지정했습니다.” 우리의 눈이 가는 곳에 우리의 손이 움직이는 곳에 우리의 캠페인으로 관심을 두는 곳에 우리의 눈길을 우리의 엽서를 우리의 캠페인을 기다리는 많은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할 것입니다.
누군가의 시선을 받는것은 때로 기쁜일입니다. 또 누군가를 따듯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일 역시 기쁜일일것입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많은 일 중에 인권의 눈의 누군가에게는 따듯함의 시선을 또 누군가에게는 감시의 시선을 보내야 할것입니다.
점심을 드신 후 창밖을 한번 보세요. 나와 다른 저 사람 때문에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이 온통 무지개빛을 낼 수 있다는 사실을 얼마나 축복인지 말입니다. 길을 가는 저 사람이 나와 다른 생각을 하고 다른 것을 보고 다른 이야길 할 수 있다는게 얼마나 퍽찬 감동인지 말입니다.
추신: 지난 7일 평택에서 노동자들의 집회가 있었다고 합니다. 진압 과정에서 경찰들 입에서 나온 이야길 전할까 합니다.
"얼굴을 보지 못하도록 상의를 뒤집어씌운 뒤 무릎으로 얼굴을 마구 때렸다. 팔을 꺾어서 꼼짝도 못하는데, 사복경찰이 '이런 공돌이 새끼들'이라고 욕하더라. 잊히지 않는다."
(금속노조 경기지부 조합원 이정규씨)
"주먹으로 얼굴을 때리고 발로 차고…. 누군데 계속 때리느냐고 했더니 '알 필요 없고, 넌 좀 맞아야겠다'고 하더라. 또 다른 경찰관은 '이 개새끼들아, 우린 강력계 형사니까 아무 것도 모르고, 넌 무조건 맞아야 한다'고 소리를 질렀다." (금속노조 경기지부 조합원 김현호씨)
21세기에, 유엔의 수장을 배출하고, 노벨평화상을 수상한 나라의 인권 수준입니다. 이들에게는 어떤 시선을 줘야 할까요? 아직도 과거에 살고 계신 분들에게 어떤 시선을 줘야 할까요? 우리에게는 황당한 뉴스 거리겠지만 저런 상황이 일상인 사람들은 또 어떨까요? 고민하고 고민하고 고민하고 우리가 할 수 있는 작은 일을 했으면 합니다.
국민 검색 창인 네이버에 따르면 높은 사회적 신분에 상응하는 도덕적 의무를 뜻하는 말이라고 합니다. 초기 로마시대에 왕과 귀족들이 보여 준 투철한 도덕의식과 솔선수범하는 공공정신에서 비롯되었다는군요.
근대에 와서는 주로 계층 간 대립을 해소하기 위한 방편으로 이용되기도 합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예로 1차와 2차 세계대전 중 영국의 고위층 자제들이 전쟁이 나가서 많은 희생을 당했다고도 합니다. 중국 지도자 마오쩌둥의 아들이 한국 전쟁 당시 참전하여 전사한 일도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아름다운 정신이 우리사회와는 유독 멀게만 느껴지는 건 왜 일까요?
2. 삼성, 현대, 대우.....그리고 당선인까지.
우선 신분사회가 철폐된 고도의 자본주의 사회에서 이런 정신이 혹은 이런 개념이 유효하냐의 논쟁이 있을 수 있을 것입니다. 또한 과연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대한민국에서 재벌로 대표되는 돈 많은 사람들이 과연 우리사회에서 존경과 신뢰를 받고 있냐 역시 다른 문제일것 입니다.
최근 우리 사회에서 연일 폭탄처럼 터지는 사건들을 바라보면서 다시금 이 말을 생각해 보았습니다.
몇 천억의 비자금을 조성하고, 횡령하고, 각종 불법과 탈법, 편법을 일삼는 저들에게 과연 우리가 우리 사회의 일원으로 그들을 인정하고 그에 합당한 사회적 책임을 요구 할 수 있을까 하는 회의도 듭니다. 그렇다고 한다면 과연 우리사회에서 이 노블레스 오블리주란 정신이 사전적으로만 있고 통용될 수 없는 사어(死語)인가라는 생각을 합니다.
3. 뒤집어 보기
예전에도 몇 번 비슷한 작업은 해 본적이 있습니다. 복습하는 의미에서 한번 다시 이야기 해 볼까 합니다. 몇 년전 우리 사회를 시끄럽게 했던 사건들의 키워드입니다. 여기자성희롱사건, 엑스파일사건 등등입니다. 우리 사회는 우리 언론은 이상하게 사건의 본질을 은폐하는 놀라운 재주가 있는 것 같습니다.
여기자성희롱 사건을 뒤집어 보면 참 재미있습니다. 사건 주체가 누구인지를 철저히 은폐하고 있습니다. 이 사건의 정확한 이름은 최연희의원 여기자 성희롱 사건이 맞을 것입니다. 또한 엑스파일사건 역시 삼성그룹 비자금로비사건이 정확하겠죠.
오늘 여러분과 이야기 하고 싶은 것은 바로 노블레스 오블리주입니다. 사전적 의미는 높은 사회적 신분에 상응하는 도덕적 의무라고 합니다. 이를 뒤집어 보면 어떤 뜻이 될까요?
‘사회적 책임을 자각한 이의 존엄성’ 정도로 보면 어떨까 합니다.
4. 다시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말한다.
우리에게 주어진 사회적 책임을 생각해 봅니다. 베트남 전 당시 한국군에 의한 민간인 학살에 대한 사회적 책임을 생각하는 이들, 민주화를 위해 국제적 유랑인을 자처한 버마인들의 좋은 친구들.... 평화라는 사회적 책임을 자각한 이들의 모임....저는 우리 모두가 생동하는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지난 10년이 우리에게 주어진 사회적 책임을 자각한 기간이었다면 앞으로의 10년은 그런 존엄한 인간들이 정말 행복하게 그 사회적 책임을 완수하기 위해 준비해야 할 것 같습니다.
여러분과 같이 한 길에 서 있는 것이 행복하며 앞으로의 시간도 잘 부탁드립니다.
▲ 2004.10.24 고엽제 피해 소송 지지서명 부천 시청 광장.
축제에 참여한 많은 이주노동자들과 한국의 시민들은 고엽제 피해자의 아픔에 기꺼이 동참해 주었습니다. 10대의 청소년부터 80년 노인들까지 이주노동자에서 지역의 국회의원까지 총 411명의 사람들이 고엽제 피해자들과 함께 했습니다.
축제의 가을 하늘은 정말 아름다운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그 아름다움은 청명함과 푸르름이 아니었습니다. 가을 하늘을 가득 채우고 있었던 것은 고엽제 피해로 아파하는 사람들과의 공감이었습니다. 고엽제 피해자들의 사진과 사건을 설명하는 판넬 앞에는 많은 사람들이 그들의 아픔에 동참하기 위해 숙연한 마음과 눈길로 그 사건 앞에 마주하고 있었습니다.
이 끔찍한 물건을 만든 당신들은 다 잊어버리고 있었겠지요. 지난 30년을 고통으로 살아 온 사람들의 삶을 단 한순간도 생각 할 수 없었겠지요. 하지만 당신들이 잊고 싶었던 아니 단 한순간도 생각 할 수 없었던 그 아픔과 고통은 베트남을 넘어 세계 각국으로 전해지고 있습니다. 얼굴 없는 당신들에게 묻고 싶었습니다. 당신들이 만든 그 고엽제라는 것이 사람들을 어떻게 만들 수 있는지에 대한 것을 생각해 보았는지 말입니다. 그리고 그 고통과 피해를 알고 있었다면 알고도 그 무시무시한 물건을 세상에 내놓고 판매 할 수 있었는지도 묻고 싶었습니다. 사람을 대상으로 하는 것은 아니였겠지요 하지만 사람을 대상으로 하지 않더라도 당신들의 그 물건은 생명을 파괴하는 무시무시한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베트남 피해자들과 같은 입장에서 연대 할 것입니다. 모든 피해자들과 함께 이 문제가 해결되는 그 날까지 계속적인 지지와 연대의 입장을 표할 것입니다. 당신은 생각지 못했던 일이었겠죠? 고엽제를 맞딱드렸던 그날의 사람들도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일이었으니까. 하지만 이제 당신들 차례입니다. 고통을 드리겠다는게 아니라 이제 함께 이 고통에서 함께 벗어 날 수 있는 기회를 하자는 것입니다.
얼굴없는 당신들께 묻고 싶습니다. 베트남이 하늘을 뒤덮었던 그 고엽제가 뿌려진 날도 오늘처럼 이렇게 아름다운 날이었나요?
1. 우리 사회 재앙에 관하여.
대한민국에서 안하면 큰 일 인게 두 가지쯤 되는 것 같다. 하나는 취직이도 또 하나는 결혼이다. 지나친 건 모자란 만 못 한일지만, 이 두 가지에 대해선 사돈의 팔촌 심지어 이웃까지 나서서 열심이다. 월드컵 열기도 이보다 뜨겁지는 않을 것이다. 이쯤 되면 가장 환상적인 조합을 한번 생각해 보게 된다. 취직 못한 노총각 노처녀들이 우리 사회의 가장 최전선에서 주변의 이유 없는 따가운 눈총을 받고 지내고 있을 것이다.
이유를 잘 모르겠다. 결혼을 안 하면, 취직을 안 하면 무슨 큰 재앙이라도 닥치는 것처럼 취급한다. 아니 정확히 못한다고 단정해 버린다. 취직도 못하는 게, 결혼도 못하는 게…
그냥 좀 내버려 뒀으면 좋겠다. 남이야 결혼을 하든 말든, 취직을 하든 말든 그 문제는 어디까지나 그 개인의 고민의 산물이다. 물론 결혼을 하고 싶어도, 취직을 하고 싶어도 못하는 부분에 대해선 자랑찬 국가와 성숙한 시민사회가 나서서 해결해야 할 문제다. 장애인들은 취업을 하고 싶어도 취업을 할 수가 없다. 농촌 총각은 결혼을 하고 싶어도 결혼을 할 수 없다. 하지만 이 부분에 있어선 우리 사회는 더럽게 관대하다. 몸도 불편한데.... 농가부채도 많은 사람이 무슨 결혼까지....이들의 주장과 요구는 철저히 외면당하고 있다. 우리 사회의 진정한 재앙은 바로 여기에 있다. 하고 싶은 사람들은 외면하고, 하기 싫다고 하는 사람들에게는 스토커 수준으로 들들 볶고 있다. 다 같은 생각을 해야 한단다. 정치권 최대 무기는 국론 분열이다. 국민은 모두 지들과 같은 생각을 해야 이 나라가 편안하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국가보안법 개폐문제는 국론을 분열시켜 안 된다고 한다. 사학법 개정역시 같은 이유이다. 과거사법도 걸핏하면 국론이 분열된다고 난리들이다. 하지만 생각해 보자. 모두 같은 생각을 하고 있다고 생각해 보라. 거리의 그 많은 사람들이 다 나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다고 말이다. 취직은 꼭해야 하는 것이고, 결혼은 당연한 거구....또 뭐가 있을까....암튼 생각만으로 끔찍하다. 또 모르지 어느 날 무지개의 일곱 색깔이 너무 난삽해서 하나의 색으로 통일해야 한다고 주장 할지 모른다. 우리 사회에서 다른 것은 틀린 것이다. 도무지 다름이 인정하고 이해하는 분위기는 없다. 무조건 통일다. 같은 옷을 입고, 같은 치마 길이에, 학생들의 머리는 귀밑 3센티를 유지해야 직성이 풀리는 사람들이다. 나는 우리 사회가 무섭다.
2. 기혼 혹은 미혼 그리고 비혼
결혼 이야기를 할까 한다. 나이가 들면서 가장 많이 듣는 권유 중에 하나가 바로 결혼이다. 선남선녀가 만나 가정을 이루고 또 자녀를 출산하고....다 좋은 이야기다. 하지만 다시 한번 생각 해 보면 이야기는 이렇다. 세상은 이미 결혼한 사람(기혼 旣婚)과 아직 결혼하지 못한 사람(미혼 未婚)만 있다. 어떤 조사문구에도 비혼(非婚)은 없다. 우리 사회의 구조는 결혼을 한 사람과 아직 결혼을 하지 못 한 두 종류의 사람만 사람취급을 하고 있다.
결혼이 사람을 판단하는 기준이 될 수 있을까? 왜 우리는 반드시 모든 사람을 결혼을 해야 한다는 전제하에 질문을 하고 사고를 수립하는 걸까? 그리고 만일 결혼이 그렇게 좋은 일이라면 혹은 사회전체가 장려해야 할 일이라면 국가가 나서서 이야기 하지 않을까? 다시 생각해 보면 아니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를 돌아보면 모든 시스템이 결혼한 사람들을 위한 제도로 구성되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어느날 갑자기 이 기혼시스템에서 떨어져 나오면 바로 이 현실에 직면 하게 될 것이다.
3.과거를 잊고, 현재를 즐기며, 미래는 모른다.
오래된 이야기다. 한 30년 전쯤 일 인듯하다. 남의 나라 전쟁에 국익을 위해 참여한 적이 있다. 오래된 이야기만은 아니다. 오늘도 국익을 위해 남의 나라 전쟁에 참여 하고 있으니 그리 새로울 것도, 이상할 것도 없다. 하지만 정말 어이없는 이야기다. 분단 상황이라고 한다. 언제든 북이 우릴 처 들어 올지 모른다고 했다. 그런데 알토란같은 병사 몇 만명을 빼고도 군사의 위협이 있다고 한다. 주춧돌을 빼서 엉뚱한 곳에다 괴고 있으면서 위험하다고 한다. 우리 집에 언제 도둑이 들지 모르기 때문에 우선 경찰서를 지켜야 한다는 논리다. 경찰이 안전해야 우리 집도 안전하단다. 하지만 우리가 가서 도와주고(?)있는 것은 경찰이 아니라 깡패도 못되는 양아치들이다.
과거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기억을 못하고 있다. 월남이 패망 할지 누가 알았나. 많이 곤란했을 거다. 아니 기억조차 가물가물한 일에 어떤 죄책감도 없었을 것이다. 수출하고 대사를 파견하고 값싼 인건비에 공장을 만들기에도 바쁜 상황이었을 것이다. 그들은 그랬다. 다시 한번 생각해 보자. 침략국 혹은 식민지배국을 도와 우리를 식민지배 혹은 우리와 전쟁을 치룬 나라가 어느날 갑자기 찾아와 과거에 대한 일말의 반성도 없이, 수교를 하고 교류를 하고, 우리나라에 투자를 하고 있다고 생각해 보자. 또 그들의 교과서에 사람들의 인식에 우리나라는 식민지배를 당할 만한 혹은 전쟁을 당할 만은 어떤 일이 있었다고 기술했다고 치자. 우리는 그들을 따듯하게 맞이할 수 있을까? 또 그게 과거의 일이니 다 잊고 지내자고 이야기 할 수 있을까? 나는 아니라고 본다. 우리 국민성이 그들을 혹은 그 나라를 용서치 않을 것이다. 아무리 좋게 지내려고 해도 가까워 질 수 없는 것이 한일관계 아닌가? 이는 단순히 과거의 식민지배의 관계 때문이 아닐 것이다. 지난날에 대한 사과도 반성도 없는 행태에 대한 불쾌감일 것이다. 하지만 우리도 그들과 다르지 않다. 또 모른다. 우리는 식민 지배를 당한거구. 베트남은 적(赤)화되는 것을 막기 위해 정당한 전쟁에 참여 한 것이라고....
4. 베트남 처녀와 결혼하세요.
사건은 이렇다. 이야기를 종합해 보면 우리는 결혼에 대한 강박증에 시달리는 사회 구조 안에 살고 있다. 결혼을 못하는 것은 재앙이다. 그래서 온 사회가 나서서 결혼을 하라고 강권하고 있다. 친척어른에 사돈에 팔촌까지 모자라 이제 온 거리에 도시에 농촌에 할 것 없이 결혼을 반드시 해야 한다고 그것도 처녀와 해야 한다고 난리들이다. 그리고 그 대상은 베트남의 처녀들이란다. 과거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는 잘 모르겠고 역사의 진실이나 정의는 내 몫이 아니니 싼 값에 아무런 문제없이 사올 수 있는 베트남 처녀와 결혼을 하라고 한다. 절대 도망가는 일도 없고, 완전 숫처녀인 베트남 처녀와 결혼하라고 한다. 초혼이건 재혼이건 나이 많이 드신 분이건 장애인이건 다 결혼을 하라고 한다. 이제는 베트남 넘어 필리핀에 중남미의 나라들까지 돈만 있으면 다 할 수 있으니 결혼 하라고 한다. 돈을 주고 사고 파는 것을 매매라고 한다. 그러니 이런 것들은 매매혼이라고 할 수 있다.
5.이해가 안가면 외우면 그만입니다.
다시 정리할 필요도 없지만 그래도 마지막으로 이야길 하자면 사연은 이렇다. 우리가 사는 이 대한민국에서 안하면 큰일 나는 두가지가 있다. 그중에 하나가 바로 결혼이다. 믿기 힘들면 이 말이 의미하는 바를 생각해 보라. 기혼과 미혼... 이미와 아직의 차이다. 결국은 다 하는 거다. 이미 그걸 해치웠느냐 혹은 아직 그걸 해치우지 못했느냐다. 결론은 같다. 결혼이다.
불행한 과거사가 있었다. 이유야 어찌 되었건 간에 잘못은 잘못이다. 다른 걸 원하는 것도 아닌데 그지 같은 분들이 죽어도 잘못했다는 이야길 않고 있다. 학살이 있었고 점령이 있었고 지배가 있었는데 약탈이 있었는데 부녀자 강간이 있었는데 죽어도 잘못했다고 이야기하는 사람이 없다. 그래서 역사가 중요한 거다. 더럽게 역사의식이 없으면 결국 나중에 개망신 당한다. 우리가 베트남에 했던 많이 일들에 대해 아직 구체적인 조사도 못하고 있는게 대한민국의 역사인식의 수준이다. 목소리 큰 놈들은 있어도 차분히 이 문제를 돌아보겠다는 분은 그리 많지 않다. 과거의 아픔도 모자 이제 그쪽 처녀들을 사겠단다. 그것도 모자라 거리에 도시에 농촌에 베트남 숫처녀, 절대 도망가지 않음 등등 최첨단 무개념으로 도배된 문구로 홍보를 하고 있다. 이 문제를 접근하는 여러 방식이 있다. 여성주의 시각, 혹은 인권은 시각 등등 다양하게 볼 수 있다. 하지만 나는 적어도 이 문제에 과거 혹은 역사를 통한 읽기를 해 봤으면 좋겠다. 또 우리 사회를 돌아 볼 수 있는 거울로 이 문제를 바라 봤으면 좋겠다. 결혼을 강요하는 사회, 또 더럽게 역사 인식이 없는 사회, 그런 사회에 미래가 있을까? 이해하기 어려운가? 그럼 외워보자.
1) 현재 거리에 나붙은 베트남 처녀와 결혼 하세요 광고물은 불법 게시물입니다.
(현수막 거리에 붙은 것은 허가를 받은 내용일 수 있습니다.)
2) 베트남 처녀 광고물의 내용은 상식 이하의 내용로 여성비하, 인권침해의 내용들입니다. (베트남 숫처녀와 결혼하세요. 절대 도망가지 않습니다. 나이드신분, 장애인 환영)
3) 베트남과 한국 사이에는 불행한 과거사가 있습니다.
(베트남 전쟁 당시 한국군에 의한 민간인 학살 피해가 비교적 많은 지역에서 자행되었습니다.)
4) 새로운 사회는 다양성을 인정하고, 역사인식를 가지며, 공존을 향해 가는 더불어 사는 지구촌을 만드는 일입니다. 최근 우리 사회의 모습은 돈이면 다 해결 할 수 있다는, 또 가난한 나라 사람들을 무시하는, 여성을 비하하는 내용으로 일관하고 있습니다. 우리 사회를 보다 성숙하게 만들기 위해서는 이 모든 것들 고쳐 나가야 합니다.
돌아보고, 기억하고, 기록하시기 바랍니다.
- 다시 노무현 대통령께
거짓의 진실
거짓말에는 두 가지 목적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자신의 부끄러운 행위를 감취기 위한 것이 그 첫 번째 이유일 것이고,
두 번째 이유는 앞으로 행할 부끄러운 행위의 정당성을 구하기 위할 목적으로 사실이 아닌 것을 이야기하고 주장하는 것이 바로 이 거짓말의 진실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거짓말에도 종류가 있습니다. 거짓이라고 해서 모두 손가락질을 받고 욕먹을 필요는 없다고 봅니다. 선의의 거짓말도 있다고 믿습니다. 하지만 가장 악질적이고 더러운 거짓은 그 거짓말로 인해 본인 스스로도 진실을 망각하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이게 아마 당신께 보내는 마지막 편지가 될 것 같습니다. 인간적 연민과 동정으로 마지막 편지를 씁니다. 다시 한번 말씀드리지만 이게 정말 마지막입니다.
독도의 진실
일본이 그랬습니다.
독도는 일본땅이라고 말입니다.
이런 일본의 발언은 거짓입니다. 당신도 알고 나도 알고 우리국민 모두가 알고 있는 거짓말입니다. 이 거짓의 진실은 앞으로 행할 부끄러운 행위 -영유권 주장-를 정당화하기 위한 더러운 거짓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당신도 나도 화가 나있습니다. 제가 더더욱 화가 나는 것은 이들의 이 악질적이고 더러운 거짓이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라는 사실 때문입니다. 역사적 왜곡을 밥 먹듯하고 있으니까요.
하지만 이들은 알고 있습니다. 자신들의 거짓을 너무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나마 이들은 반성을 할 수 있는 최소한의 가능성이라도 있습니다. 그러나 제게 보기엔 당신이나 우리 정부는 이런 최소한의 가능성도 상실해 가는 것 같습니다.
이라크의 진실
아직도 이라크의 평화와 재건을 위해 파병을 했다고 이야기 하실 겁니까?
오늘 뉴스에도 이라크 내의 여러 가지 어려운 정국에 관한 뉴스 보도를 접할 수 있습니다. 전쟁을 개시한지 2년이 넘도록 또 종전을 선언한지 일년이 넘도록 또 과도 정부를 수립하겠다는 공언 이후에도 이라크의 상황은 달라질 기색이 보이지 않고 있습니다. 아니 어쩌면 당신과 부시가 바라는 그런 이라크는 앞으로 영원히 없을 것처럼 보입니다. 독재자를 권좌에서 몰아내고 당신들이 선물한 것 은 혼란과 분열이었습니다. 이라크인들에게 필요 했던건 독재자의 제거가 아니라 스스로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고 생각합니다.
혹시 알고 계신가요? 오늘의 이라크의 상황이 해방과 분단의 시기에 우리 역사와 닮아 있다는 사실 말입니다. 그래서 누군가는 이야기 합니다. 이라크는 분단 될 것이라구요...크루드족과 시아파와 수니파로 갈기갈기 찢어 질 거라구요. 온 세상 사람들 다 알고 있는 이야기를 오직 당신만 모르고 있는 것 같아 이야기 합니다. 그 더러운 전쟁에 함께 동참했던 많은 나라들이 철군과 지지철회를 선언했습니다. 경제적 이익 이전에 이 더러운 거짓에 더는 하루도 동참 할 수 없다는 결단과 선언이었습니다. 자기 국민이 살려달라는 아우성에 그들은 뒤 돌아 계산기 두드리지 않았습니다. 10억불 100억불 보다 노동자, 기자 단 한명의 생명을 위해 군대를 철수 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때 당신은 무엇을 하고 있었습니까?
평화와 재건을 위한다는 군대는 아무도 모르는 새벽을 골라 야반도주하듯 언론과 국민들을 따돌리면서 대한민국을 떠나야 했습니다. 살려 달라고 울부짖는 김선일씨의 절규에 우리정부가 한 일은 협상이 아니었습니다. 우리가 얻은 것이 무엇인지 묻고 싶습니다. 아직 수습의 기미조차 볼 수 없는 전쟁이니 조금만 시간을 달라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에겐 반면교사가 있습니다. 베트남 전쟁을 기억하시는지요? 이라크 전쟁만큼 아니 미국의 이라크 침공만큼 더러운 전쟁이 바로 미국의 베트남 침공이었습니다. 우리는 그 더러운 침략전쟁을 거들었던 비극적인 역사적 기억이 있습니다. 구구절절이 이야기 하고 싶습니다. 제가 지난 3번의 베트남 방문을 통해 아직도 그날의 고통들로 하루하루를 살아야 했던 많은 살아남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하고 싶습니다. 그래서 전쟁은 아니라고 더는 전쟁은 아니라고 이야기하고 싶었습니다.
베트남의 진실
운동장 한 가운데 한국군에 의해 죽어간 사람들의 위령비가 있고, 교실 뒤에 죽은 자들과 함께 학교생활을 해야 하는 초등학생들에 대해 생각해 보신 적 있습니까? 매일 매일 자기가 살아 나왔던 죽음구덩이를 봐야 하는 할머니의 심정을 이해 할 수 있습니까? 살아서 평생 앞을 볼 수 없게된 사람의 심정을 이해 할 수 있습니까? 이게 당신들이 이야기 했던 자유와 평화를 지키는 일이었는지 묻고 싶었습니다.
베트남을 경험하고도 또 이라크에 군대를 보낼 수 있는 당신들의 정신상태가 궁금했습니다. 이제 마지막으로 당신께 부탁드립니다. 우리 교과서에 분명히 그 비극적인 일에 대해 기술할 것을 요청 드립니다. 예전에 미국이 저지른 나쁜 전쟁에 참여해서 경제적 이익을 구한 적이 있다고 말입니다. 그리고 또 미국이 저지른 나쁜 전쟁에 최근에도 참여해서 국민도 죽이고 경제적 이익을 구하고 있다고 말입니다. 그리고 다시는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그 역사적 사실 앞에 겸허히 반성과 용서를 구하시기 바랍니다. 독도의 영유권 주장 이전에 저는 이런 역사적 진실을 겸허히 수용하고 반성 할 줄 아는 당신과 우리나라가 되길 바랍니다. 기억하지 못하면 단 한발도 앞으로 나아갈 수 없습니다.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일본에 협조하여 독립 운동가를 고문 했던 친일파들을, 제주도에서 민간인을 상대로 발포 명령을 내렸던 그 자들을, 한국전쟁에서 죽어야 했던 억울한 민간인들을, 베트남전쟁에서 죽어간 어린아이들과 민간인들을, 그리고 광주에서 그리고 다시 이라크에서 죽어간 그 죽음들을 말입니다.
전쟁의 진실
저는 다시 네 번째 베트남 행을 준비 하고 있습니다. 지난번 여행을 제게 무척 힘든 여행이었습니다. 영혼의 집을 짓는 내내 제 귀에 들여왔던 환청 때문이었습니다.
억울해...억울해...억울해...
결국 저는 병원 신세를 지고 돌아 왔습니다. 내내 마음이 무거웠습니다. 누구의 목소리였을까? 그리곤 그 목소리의 주인공을 알아냈습니다. 그 목소리는 억울하게 죽어간 베트남 사람의 목소리였습니다. 또 그 목소리는 아무것도 모르고 전장에 버려졌던 어린 한국군 병사의 목소리였습니다. 전쟁은 그런 것입니다. 누구도 행복할 수 없는 행위입니다.
아직도 많은 베트남 사람들이 전쟁의 고통에서 고생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끝난 이야기는 아닙니다. 참전을 했던 많은 한국군이 정신적 육체적 고통을 당하고 있습니다. 전쟁을 주도한 미국은 아예 이 전쟁을 잊혀진 전쟁이라고 합니다. 결국 남은 것은 무엇입니까?
다시 네 번째 베트남 행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2003년에 다녀온 빈영 마을로 다시 갈 예정입니다. 그리고 그 모레무지에 누워있는 그 분들을 다시 만나고 올 작정입니다. 아직 늦지 않았습니다. 이제 다시 시작하면 되는 것입니다.
제일 먼저 전쟁에 참여 했던 참전자들의 오늘을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베트남 전쟁에서 행했던 일들을 하나하나 기록하고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이라크에 나가 있는 우리 군대를 지금 곧 철수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우리 역사에 평화를 기록하시기 바랍니다. 더러운 거짓의 역사를 드러내고 기억과 화해를 통해 평화의 역사를 기록하시기 바랍니다. 평화는 일상입니다. 기억입니다. 그리고 화해입니다. 당신과 함께 일상에서 기억하고 화해하고 평화를 만들고 싶습니다. 마지막으로 부탁드립니다. 마지막으로...
2005년 기억과 화해를 바라며
노무현 대통령 미국 방문과 관련한 두번째 편지.2004. 06.
0. 역사의 수레는 거꾸로 돌고....
저는 요즘 한국 현대사에 대한 공부를 하고 있습니다. 참 재미있는 것은 역사라는 것이 꼭 한번은 반복되는 것 같습니다. 누군가는 이 역사의 아이러니를 이렇게 말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 역사는 반복된다 한번은 비극으로 또 한번은 희극으로...."
저는 이라크 전쟁과 관련해 부시 대통령에게 편지를 쓴 적이 있습니다. 아버지 부시의 비극을 다시금 반복하지 말라는 간곡한 편지였습니다. 하지만 그는 끝내 비극적 전쟁을 그리고 역사의 수레를 거꾸로 돌려 다시 한번 같은 나라 같은 사람들에게 비참한 역사를 반복했습니다.
당신의 방미 기간 내내 저는 우리 역사의 닮은꼴을 찾아보았습니다. 당신이 지고 있는 역사의 수레는 누구와 닮았는지 그리고 그 역사의 수레가 가능 방향이 역사의 정 방향인지 아니면 야만과 탐욕의 방향인지 말입니다. 그리고 참담한 심정으로 당신에게 편지를 보냅니다.
1. 기억하십니까?
1961년 11월 당시 대통령 박정희는 케네디 대통령의 환심을 사기 위해 베트남 파병을 제안했다고 합니다. 그가 남긴 말들 중에 이런 말들이 있습니다.
"미국이 너무 혼자서 많은 부담을 지고 있다" , "자유세계의 일원으로서 미국의 과중한 부담을 덜어 준다" 이에 감동 받은 케네디는 예정에도 없었던 일정으로 정상회담을 진행했다고 합니다.
2. 이른바 국익에 대해
베트남전 참전으로 우리 대한민국이 얻을 것을 보면 기막힐 노릇입니다. 남의 전쟁 참전을 통해 경제적 이익을 따지는 것 자체가 비극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국익 국익하는 우리 사회에 하나의 경종이 되고자 근거를 제시해 볼까 합니다.
당시 한국이 이른바 베트남 특수로 얻은 이익은 10억불 정도라고 합니다. 하지만 단 한 명의 파병도 없이 이웃 일본이 얻은 특수는 우리의 10배정도인 100억불 정도라고 합니다. 물론 당시 국가경제의 비교로 보아서 단순 비교 자체가 무리가 있을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한다면 단 20명을 파병하고 대만이 얻은 경제적 이득이 얼마인지 알고 계십니까? 6억불이라고 합니다.
단 20명의 군인을 파견하고 얻은 경제적 이득과 연인원 32만 명 파병에 5천 여명의 사망자에, 1만 여명의 부상자, 2만 여명의 고엽제 피해자들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보신 적이 있습니까? 이라크 전쟁을 통해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것은 대체 무엇입니까? 남의 비극을 틈타 경제적 이익을 얻는 것이 과연 국익입니까?
3. 변명
물론 대통령 박정희에게도 할 말을 있을 것입니다. 당시 그가 그토록 원했던 건 주한미군의 계속 주둔 및 북한의 침공이 있을 때 미국의 자동개입문제 등이었습니다. 하지만 결과부터 말씀 드리자면 얻은 것이라곤 미국의 용병이라는 국제적 지탄과 피 같은 젊은이 32만을 파병의 대가로 얻은 10억불, 아직도 우리 발목을 잡고 있는 소파(sofa)입니다. 또한 그는 소파(sofa)가 나토(nato)로 격상되길 원했습니다.
당시 박정희는 우리가 파병을 하지 않으면 우리를 지키고 있는 미군이 베트남으로 파병 될 수 도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파병을 해야 한다고 이야기며 파병을 결정했습니다. 허나 어쩐 일인지 미국은 1971년 일방적으로 주한미국의 일부가 철수를 하게됩니다. 그것도 베트남이 아닌 미국으로 말입니다.
4. 자화상
베트남 전을 통해 본 우리의 자화상입니다.
저는 이 자화상이 최근이 일어나 이라크 전쟁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이 비극의 역사가 왜 다시 반복되고 있는지에 대한 궁금증도 풀고 싶을 따름입니다. 당신의 방미를 두고 말들이 많습니다.
저는 당신에게 방미와 관련해 이런 저런 이야길 드리고 싶어 글을 쓰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오직 당신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어서입니다. 만일 부시가 제 편지를 읽었다면 이번 정상회담에서 그 편지에 대한 이야기가 오고 갔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부시의 태도를 보아 그는 글이라고는 읽을 줄 모르는 인간인 것 같아 다시 한번 당신에게 이야길 전합니다.(이미 부시가 문맹이 아닐까 하는 의구심은 마이클 무어라는 영화 감독을 통해 그의 저서 멍청한 백인들에 잘 나와 있으니 일독을 권합니다.)
5. 평화를 위한 아름다운 동행
저는 이번 여름 이 땅의 귀한 아들딸들과 베트남 중부 지역을 여행을 할 것입니다. 이 여행에는 동행이 있습니다. 그들은 베트남의 귀한 아들딸들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가는 이 여행은 한가지 목적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평화'입니다. 언어는 다르고, 자란 환경을 다르지만 평화라는 한가지로 양국의 귀한 아들딸들은 하나가 될 것입니다.
베트남 중부는 한국군에 의한 민간인 학살로 유명한 곳입니다. 마을 입구마다에는 위령비가 있고 묘지가 조성되어 있습니다. 집단학살을 당한 사람들은 그나마 행복한 사람들입니다. 길에 가다 총에 맞거나 숲 속 어딘가에서 강간을 당한 후 죽은 사람들의 이름은 그 위령비 어디에도 없으니까요.
우리가 함께 가는 여행지는 베트남 중부 지역인 꽝남성 빈영 마을이라는 곳입니다. 약 20구의 주검이 누울 자리 하나 마련하지 못하고 누워있는 곳입니다. 연고자가 없거나 돈이 없어 죽은지 30년이 넘도록 모래무지에 있는 이들의 집을 지어주기 위한 여행입니다.
6. 돌이 되시길 바랍니다
이 여행의 종착지는 영혼의 집짓기입니다.
저는 당신에게 차리리 돌이 되라고 말씀 드립니다.
할말을 할 줄 아는 당신이었습니다.
당신은 정치 9단이 아닙니다.
화려한 수사나 정치적 고려나 계산을 하는 그런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바보 노무현" 그래서 우리는 당신을 이 나라의 일꾼으로 불렀습니다.
하지만 3개월간 보여 준 당신의 모습에 저는 많은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 또 그래서 당신에게 말합니다.
차라리 돌이 되시길 바랍니다.
영혼의 집을 짓기 위한 하나의 모통이 돌이 되길 바랍니다.
그래서 억울한 주검의 영혼들과 이야기 나누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같은 죽음을 당한 이라크 민중들과 이야기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두려움에 굶주림에 떨고 있는 북한의 동포들을 만나시기 바랍니다.
당신에게 이갸기 합니다.
차라리 돌이 되시길 바랍니다.
골리앗의 머리통을 날려 버렸던 다윗의 돌처럼
우리의 돌이 되어 골리앗 행세를 하고 있는 부패를 날리고 부정을 날리고
낡고 오래된 잘 못된 것들을 날리고
마침내 한반도 전체를 위협하고 있는 악을 날려 버리시기 바랍니다.
당신을 초대합니다.
이 땅의 귀한 아들과 딸들의 앞길에 당신을 평화를 이루는'돌'로 초대합니다.
빈영마을 영혼의 집짓기(묘지조성 사업)여행에
베트남과 친구되기 위한 동행에 당신을 초대합니다.
▲ 영혼의 집짓기 후 베트남과 한국의 청년들이 분향.
(빈영마을 민간인 학살 피해자 공동 묘소)
부시 미 대통령에게 보내는 편지
오늘 아침 당신은 기어이 전쟁을 일으키고 말겠다는 소식을 다시 한 번 전세계에 공표했습니다. 다른 많은 나라에서는 물론 당신네 나라 사람들조차 반대하는 명분없는 전쟁을 꼭 하겠다는 것이지요. 아마도 당신은 국제 사회의 최소한의 도덕조차 지키지 않은 패륜아의 명단에 오르게 될 것입니다.
당신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습니까. 당신을 보고 있노라면 옆자리의 사람과 기본적인 소통조차 할 수 없는 정신병 환자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합니다. 그러나 나는 인내심을 가지고 당신에게 말하려고 합니다. 인류가 전쟁이란 것을 통해 얻은 것이 무언인지, 전쟁이라는 것이 얼마나 인간을 불행하게 만들어 왔는지 당신에게 다시 한 번 증거들을 보여주려 합니다.
전쟁이란 탐욕과 야만의 얼굴이라고 배워왔습니다. 그러고보니 당신 역시 역시 탐욕과 야만의 노예가 된 듯 하군요. 저는 이 야만의 얼굴을 당신에게서만 발견한 것은 아닙니다. 우리 인류사에 재앙을 초래한 독재자의 얼굴들과 당신의 얼굴은 닮은꼴입니다. 로마의 네로, 이탈리아의 무솔리니, 독일의 히틀러의 얼굴 위로 당신의 얼굴이 겹쳐집니다. 당신은 이 살인마들의 탐욕과 야만을 고스란히 물려 받았기 때문입니다.
이제 제 이야길 하려고 합니다. 제 개인의 이야기가 전쟁을 막을 수 있다고 생각하진 않습니다. 오히려 전쟁의 광기에 놀아나고 있는 이 세상에 동화되지 않기 위한 스스로의 다짐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제 진심이 당신에게 전해지리라는 깊은 믿음으로 이 글을 시작하려 합니다.
베트남을 기억하십니까?
베트남이란 나라를 알고 계십니까? 어찌보면 당신이 기억조차 하기 싫은 나라일 수 있겠군요. 수퍼 울트라 초강대국이 패배를 경험한 땅이니까요. 저는 두 번에 걸쳐 베트남을 방문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한번은 베트남전에 참전했던 참전군인들과의 동행이었고, 다른 한번은 전쟁을 경험하지 못한 양국(베트남-한국)의 청년들이 만나는 자리였습니다.
처음 비행기 상공에서 내려다 본 베트남은 그야말로 끝을 알 수 없는 평야가 이어지는 들판이었습니다. 그리고 이내 이 평야는 제게 평화의 땅으로 다가왔습니다. 누굴 만나도 환한 미소로 대하는 베트남 사람들, 일상에 깊이 뿌리 박고 있는 여유로움과 너그러움은 이 땅에서 제가 발견한 것들이었습니다. 또한 아이들의 눈망울은 얼마나 순하고 아름답던지요. 이내 제 마음은 이 아름다운 땅 베트남에 모두 빼앗겨 버렸습니다. 하지만 그 아름다운 여운도 그리 오래가진 못했습니다. 그 땅엔 곳곳에 전쟁의 아픔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사진제공 : 건치)
저희가 방문한 대부분의 베트남 시골 마을 입구에는 비석이 하나씩 서 있습니다. 그것은 다름 아닌 베트남전쟁 당시 죽어간 사람들을 위로하는 위령비였습니다. 그나마 위령비가 있는 마을은 다행이란 생각을 하게된 것은 증오비를 본 이후였습니다. 해방(베트남 사람들은 베트남전 종전을 해방이라 부르더군요) 직후에는 마을마다 증오비가 섰다고 합니다. 그 중의 한 증오비에는 이런 문구가 써있었습니다. '하늘에 가 닿을 죄악 만대를 기억하리라!' 아름다운 나라 베트남에는 이런 씻을 수 없는 상처와 아픔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상처를 준 가해자가 바로 당신의 나라 미국과 제가 살고 있는 땅 대한민국입니다.
회복되지 않는 상처
이야기가 무거워지는 것 같습니다. 재미난 이야기 하나 하겠습니다. 우리 일상을 보면 베트남은 가까운 나라입니다. 월남치마, 월남뽕, 월남스키부대, 월남에서 돌아온 새까만 김상사 까지… 한국사람들이 사용하는 일상의 언어에 월남이란 나라는 다른 어느 나라에 뒤지지 않을 만큼 가까운 나라입니다. 거기에 수업시간을 통해, 아버지를 통해 듣게 되는 베트남 전쟁 당시 '자유와 민주주의를 수호하기 위한' 한국군인의 용맹무쌍함까지 더한다면 베트남은 우리에게 아주 친숙한 나라지요. 그러나 그 용맹함과 친근함 이면에 숨어 있는 얼굴은 야만과 탐욕의 얼굴 곧 당신의 얼굴이었습니다.
처음에 말씀드린 것처럼 저는 두 번 베트남을 방문했습니다. 그 첫 번째는 참전군인들과의 동행이었습니다. 전쟁이 끝난지 30년의 세월이 넘었지만 그분들은 과거에 대한 죄책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또한 그 분들이 전쟁을 수행했던 바로 그 곳에 살고 있는 베트남 사람들 역시 과거의 고통이 아직 끝나지 않은 채였습니다. 30년이 넘었지만 피해자에게도 가해자에게도 전쟁은 계속 되고 있었습니다. 참전군인들은 베트남 사람들 앞에서 눈물로 용서를 빌었습니다. 다시는 이런 불행한 일이 일어나지 않아야 한다고 참전군인들은 젊은 세대인 우리에게 진심을 다해 이야기했습니다. 저는 전쟁의 얼굴을 다시 한번 봤습니다. 전쟁은 전쟁기간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두고두고 이어지는 정신적 외상, 무엇으로도 회복되어질 수 없는 영혼의 파괴를 동반하는 것이었습니다.
두 번째 방문은 양국 청년들과의 만남이었습니다. 베트남 전쟁 당시 한국군에 의해 전가족을 잃고 홀로 살아 계신 할머님의 무너져 가는 집을 지어드리고 마을 청년들과 만남의 자리를 갖는 시간도 마련했습니다. 과거사를 돌아보고 평화로운 미래를 만들기 위한 젊은이들의 노력이었습니다. 그러나 이 모든 노력에도 불구하고 할머니의 날아간 턱은 다시 재생되어질 수 없고, 품에서 산산조각이 난 손자의 모습은 여전히 할머니의 생을 어두운 터널 속에 가두어 놓으리라는 것 또한 우리는 압니다.
전쟁은 생명을 파괴하는 일
당신이 이 비극적인 일을 그만 둘 것을 기도하겠습니다. 전쟁은 그리 간단한 문제가 아닙니다. 당신이 편안한 집무실에서 보고 받는 그런 워게임(WAR GAME)이 아닙니다. 전쟁은 살아 있는 모든 것들에 대한 파괴행위입니다. 전쟁은 인간성을 말살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입니다. 그리고 전쟁은 어느 누구에게도 이로울 것 없는 인간이 할 수 있는 가장 잔혹한 행위입니다.
저는 올해 세 번째 베트남 방문을 계획하고 있습니다. 알고 계실지 모르겠지만 꽝남성 빈영 마을이라는 곳은 전쟁이 있기 이전엔 평화로운 농촌 마을이었습니다. 그곳에 당신의 군대와 대한민국의 군대가 가서 민간인을 학살했습니다. 그 날 죽은 사람들은 학살이 있은 지 30년이 넘도록 누울자리 하나 변변히 마련하지 못해 모래무지에 누워있습니다. 아무 것도 남김 없이 초토화 된 땅에서 살아남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만 했던 살아남은 사람들이 마련한 무덤자리는 초라하기 그지 없고, 마을 사람들은 늘 무덤을 잘 조성해야 한다는 소망을 부채처럼 안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저는 이곳에서 그 주검들 하나 하나의 이름을 부를 것입니다. 그래서 그 억울한 죽음의 사연들을 생생히 듣고 올 것입니다. 전쟁의 참혹함과 야만에 대해 그 분들보다 더 잘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분들이 편히 누울 수 있는 영혼의 집을 마련해 드리고 올 것입니다. 이 일은 불행했던 과거에 대한 반성과 전쟁의 얼굴을 마주하기 위함입니다. 남의 나라 전쟁에 참여하는 것이 얼마나 불행하고 끔직한 일인가를 똑똑히 보고 올 것입니다. 평화는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만들고 가꾸는 것임을 또한 배우고 올 것입니다.
이라크에 세워질 증오비
이제 마지막으로 당신에게 말합니다.
베트남 전쟁을 기억하기 바랍니다. 당신의 아버지가 행했던 명분 없는 전쟁에 대한 기억 또한 잊지 말길 바랍니다. 베트남 전쟁에 참여했던 미군들의 모습을 기억하기 바랍니다. 아무런 이유도 목적도 없이 남의 전쟁에 참여했던 이들이 겪어야 했던 모순과 갈등과 분노와 그 사이에서 저질러졌던 학살을 기억하기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아무것도 모르던 아이들의 죽음을 기억하기 바랍니다. 이제 마악 세상과 인사한 아이의 아름다운 눈동자를 향해 겨눈 그 총부리를 이제 거두기 바랍니다. 지금 당신이 쏘아올린 그 미사일이 언젠가 당신을 향해 겨누어질 것이라는 걸 기억하기 바랍니다.
30년 후 이라크에 세워질 증오비를 생각하십시오. 하늘에 가 닿을 죄악 만대를 기억하리라. 하지만 이 증오비는 아직 만들어지지 않았습니다. 전세계가 반대하는 이 전쟁은 당신을 파국으로 몰고갈 것입니다. 인간의 얼굴을 한 당신을 보고 싶습니다. 불안한 마음으로 이 밤을 지새울 이라크 아이들의 선한 눈망울을 기억하길 인간의 이름으로 당신에게 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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