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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8/10/21 어떤 날.
2008/10/21 15:11

어떤 날.


10월 1일은 국군의 날이며

10월 2일은 노인의 날입니다.

10월 3일은 개천절이며

10월 5일은 세계 한인의 날입니다.

10월 8일은 재향군인의 날이며

10월 9일은 한글날입니다.

10월 15일은 체육의 날이며

10월 18일은 문화의 날입니다.

10월 21일 오늘은 경창의 날이며

10월 24일은 국제연합일입니다.

10월 28일은 저축의 날이면서 동시에 교정의 날이라고 합니다.

달력에는 없는데

10월 10일은 세계사형페지의 날이고

10월 17일은 빈곤퇴치의 날입니다.

다시 다른 달력에 있는 날들입니다.

10월 16일은 김수배1)열사 추모일이고

10월 17일은 김주익 열사 추모일입니다.


10월 26일은 최웅2)열사 추모일이고

10월 27일은 정혜진 열사 추모일입니다.

10월 29일은 이재호 열사 추모일이며

10월 30일은 곽재규열사3) 추모일입니다.

10월 마지막날 우리에게 비정규직 문제를 알리고 산화해 가신 이용석 열사의 추모일입니다.


몇일 전에 메모리즈란 글을 쓰고 멍하니 달력을 보니 참 많은 날들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다시 민주노총 수첩을 보니 또 거기에도 많은 날들이 있었습니다.

운동 한답시고 왔다 갔다 하던 시절의 일입니다. 419가 518인가 후배들 데리고 술을 먹고 선배에게 불려가 엉청 혼이 난적이 있습니다. 오늘이 무슨 날인줄 알고 있냐? 그런 날 애들 데리고 술을 먹어? 제가 요즘도 가급적 술을 안마시게 된 결정적인 사건이기도 합니다.

기억해야 할 날들.....그리고 기록해야 할 날들....노동현장을 넘어 서울을 넘어 대한민국을 넘어 도처에 각지에 기억하고 기록해야 할 일들이 참 많은 것 같습니다. 역사가 반복되고 한번은 비극으로 또 한번은 희극으로 반복된다고 하는데 우리들에게는 늘 비극의 역사만 반복되는 것 같아 조금은 씁쓸합니다.

오늘은 어떤 날인가요?


1)  김수배 열사 약력 소개

 김수배 동지께서는 1956년 6월 19일 부산에서 4남1녀중 둘째로 태어나셨습니다. 경남공고와 성균관대를 졸업한 열사는 1986년 6월 고려화학에 입사하여 실란트 기술부에서 근무 하셨습니다. "주면 주는대로, 시키면 시키는대로" 노예적 굴종의 삶을 박차고 노동자도 인간임을 만천하에 선포했던 87년 노동자 대투쟁의 과정에서 드디어 8월 5일 고려화학에도 노동조합이 설립되자 동지께서는 사무국장으로 활동하셨습니다.

* 노동조합 사무국장으로서 헌신적인 활동을 펼쳐 나갔던 김수배 동지는, 어려운 투쟁의 과정에서 동지들에게는 굳건한 믿음이 되고, 사측에게는 무엇보다도 두려운 존재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또한 노동자 대투쟁의 거대한 열기앞에 속수무책이었던 당시 총자본의 반격이 몰아치면서 동지는 그 표적이 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사측의 음모가 점점 노골화 되어 가는 중, 동지께서는 누구도 감당못할 무거운 짐을 어깨에 진채로 혼자의 몸으로 사측의 탄압을 분쇄하기 위한 투쟁의 불길로 솟구칠 결심을 내렸습니다. 드디어 10월 16일 12시 40분경, 지금으로부터 꼭 17년전 동지께서는 도료 생산부에서 용제를 끼얹고, 자재창고 앞에서 불을 당긴후, 창고 앞으로 뛰어나가 쓰러지셨습니다.

* 숯검댕이로 시커멓게 변한 동지의 시신은 천추에 씻지 못할 한으로 남아 당시 목격 동지들의 가슴에 깊이 사무쳤고, 이후 지금까지 우리 후배들의 가슴가슴에 살아 숨쉬고 있습니다. 현재 열사께서는 민주화운동 유가족 협의회가 정한 우리나라 수백분의 열사 가운데 한분으로서 역사에 길이 길이 기억될 것입니다.

2) 최웅씨는 87년 극심한 산업재해로 1년에 잘린 손가락만 한가마씩 나온다는 경동산업에 입사해서 풍물패 활동과 민주화 모임인 디딤돌의 열성적인 회원으로 활동을 시작하였다. 그러나 89년 봄 그를 경계하기 시작한 회사측에 의해 해고되었다. 또한 회사측은 디딤돌 자체를 와해시키려 하였고, 결국 대의원 선거를 앞두고 디딤돌 회장단에 대한 징계 회부, 이에 저항한 디딤돌 회원들과 조합원들의 농성, 그리고 노동자들의 분신이 잇따르는 상황에서, 두 명의 노동자가 운명하고 대부분 구속되었다. 이후 90년 초까지 인천지역해고자협의회 실무자로 근무하면서 복직투쟁을 전개하였다. 90년 초 인천민중교육연구소와 92년 인천민중연합 상담실 실무자로 근무하였으며 전두환 정권 때부터 병역징집 거부투쟁을 계속하였기에 당시 그는 노동조합 방문조차도 마음대로 하지 못할 만큼 신분이 위협을 받고 있었다. 그렇게 열심히 활동하던 그가 1993년 10월 26일 처가의 반대를 극복하고 올린 결혼식 신혼여행에서 불의의 조난사고로 운명을 달리하게 되었다


3) http://blog.naver.com/tnt62sik?Redirect=Log&logNo=1300007379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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