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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10/04 01:05

김원석과 그 악단

지금은 고인이 되신 제 아버지는 김원석과 그 악단에서 김원석 역할을 하셨습니다. 덕분에 저는 비교적 어린 나이에 각종 카바레를 출입할 수 있었고, 남진 쑈을 비롯하여 당시 80년초반부터 중반까지 대중음악을 볼 수 있었습니다. 아버지 덕분에 함께 고인이 되신 이주일 아저씨를 아저씨라고 부를수 있었고 김희수 아줌마를 가까이 뵐수 도 있었습니다. 각설하고 아버지는 기타리스트였습니다. 그리고 악단장 이른바 밴드 마스터를 하셨죠. 그러던 어느날 아버지께서 집에 책을 한권 사가지고 오셨습니다. 노동법 해설인가 암튼 노동법에 관련된 책이었습니다. 그리고 몇 달이 있다 아버지는 경찰서에 가셨었습니다. 나중에 들은 이야기라 정확하진 않지만 총명한 제 기억력을 되살리면 아버지는 연주인노동조합을 만드시는 일에 참여 하신 것으로 알고 있고 무슨 지부장을 하셨습니다.(기념타월을 제가 아직 보관 중입니다.) 그리고 아버지는 노조만든 것과 관련해서 경찰서에 가셨는데 그 이유가 우습게도 마약 혐의를 받으신 관계로 사신것입니다. 나중에 아버지가 후배들이랑 하는 이야기를 종합해 보면 딴따라들이 노조를 만들었는데 뭘로 작아갈게 없으니까 가장 만만한 마약 혐의가 있다는 식으로 해서 아버지를 조사했었다고 합니다. 이후 아버진 무혐의를 받으셨습니다. 오늘 하고 싶은 이야기는 노동자들의 권리에 대한 부분입니다.

근로기준법에 제4장 근로시간과 휴식편에 제50조(근로시간) ①1주 간의 근로시간은 휴게시간을 제외하고 40시간을 초과할 수 없다. ②1일의 근로시간은 휴게시간을 제외하고 8시간을 초과할 수 없다. 라고 명시하고 있으며 제53조(연장 근로의 제한) ①당사자 간에 합의하면 1주 간에 12시간을 한도로 제50조의 근로시간을 연장할 수 있다. ②당사자 간에 합의하면 1주 간에 12시간을 한도로 제51조의 근로시간을 연장할 수 있고, 제52조제2호의 정산기간을 평균하여 1주 간에 12시간을 초과하지 아니하는 범위에서 제52조의 근로시간을 연장할 수 있다. ③사용자는 특별한 사정이 있으면 노동부장관의 인가와 근로자의 동의를 받아 제1항과 제2항의 근로시간을 연장할 수 있다. 다만, 사태가 급박하여 노동부장관의 인가를 받을 시간이 없는 경우에는 사후에 지체 없이 승인을 받아야 한다. ④노동부장관은 제3항에 따른 근로시간의 연장이 부적당하다고 인정하면 그 후 연장시간에 상당하는 휴게시간이나 휴일을 줄 것을 명할 수 있다.라고 명시하고 있습니다.

저는 몇 주전에 직원 면접에 면접관으로 참여 하는 영광을 누렸습니다. 중앙부처의 계약직 공무원이 오침 7시에 출근해서 밤 11시면 일찍 끝나는 편이라는 답변을 듣고 아연실색했습니다. 그 친구뿐만 아니라 지인 중에 중앙부처 공무원들은 대체로 그 정도 일을 하는 것 같습니다. 또 이른바 잘나가는 대기업 노동자들 역시 그 정도의 노동시간을 일하는 것으로 듣고 알고 있습니다. 

분명 법은 주 40시간의 노동시간을 명시하고 있으며 또 연장 근로에 관한 규정을 규정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 사회 많은 노동자들 중에 이 법에 보호(?)를 받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하는 의문이 들었습니다. 비단 근로시간에 관한 것뿐만 아니라 세계 일류를 지향하는 모 그룹은 아예 노동조합 자체를 인정하고 있지 않는 상황에서 이 정도는 작은 애교로 봐야 하는 걸까요?

우리는 인권에 관심을 갖고 있고 그 인권을 조금이라도 지키고 조금이라도 향상시키고 그것을 옹호하기 위해서 함께 힘을 모으는 중이라고 생각합니다. 최근에 일어나고 있는 국가보안법과 광우병쇠고기수입반대집회 참여자들에 대한 대대적인 탄압 등의 우선 순위에서도 저는 이 노동자들의 권리를 옹호하는 일이 국가보안법이나 사형폐지 집회 및 시위의 자유를 지키는 일보다 후 순위에 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이런 기본적인 권리조차 지켜지지 않는 상황에서 우리가 인간의 권리를 이야기 하고 이를 옹호하기 위한 활동을 하는 것 조차 어찌보면 너무나 먼 이야기 같습니다.

저는 대학에서 일을 하며 학생들을 대상으로 하는 업무가 아니라 일반 성인학습자들을 위한 교육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우리대학에는 노동대학이라는 프로그램이 있습니다. 내년이면  10년을 맞이 하는 우리대학 평생교육 프로그램의 대표 프로그램입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저는 매 학기 수료식을 하면서 그해 교육과정의 성패를 해고자가 몇 명나왔느냐로 계산을 한적이 있었습니다. 우리 사회에서 제대로 교육받아 제대로 권리를 주장할 경우 과연 몇이나 계속적으로 직장 생활을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서였습니다.

이 글을 토요일부터 조금씩 쓰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사실은 단순히 (이 부분에 오해가 없으셨으면 합니다.) 근로시간 문제를 통해 우리 사회에 노동권 문제를 나누고 싶었습니다. 제가 그래도 평생교육사인데 우리 사회에서 우리 같은 노동조건에서 과연 누가 온당히 자신의 교육권을 누릴 수 있나 하는 문제의식에서였습니다. 하지만 생각 생각을 더 해보니 이런 고민이 사치처럼 느껴졌습니다. 1000일이 넘도록 투쟁 중인 기륭전자부터 고공농성을 감행하고 있는 KTX 문제 또 알려지고 드러나지 않고 있는 많은 노동문제들에 대한 답답함으로 우리가 하루에 열 시간이 넘는 노동을 하고 있는 것조차 이분들께 죄송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어제는 드디어 국가보안법 사건이 또 발생했습니다. 저는 제발 이런 저급한 문제로 우리가 기본적인  존엄의 문제를 후순위로 배열해야 하는 이런 난감한 상황에 대해 어떤 대처해야 할지 고민스러울 지경입니다.

우리의 머릿속부터 우리의 생활전반에 우리의 권리를 지키고자 하는 이들의 투쟁은 계속 될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 사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이 종열적 배열을 거부하고 횡열적 배열로 우리 사회 전반에 대해 문제제기를 해 봤으면 좋겠습니다. 올해는 세계인권선언 60주년의 해입니다. 우리 사회 인권당면 과제를 60을 선정하고 이를 해결하기 위한 사회적 노력을 함께 진행해 봤습니다. 아울러 인간의 존엄을 선언하고 이를 옹호하기 위한 앰네스티의 노력에 정말이지 기본권조차 지킬 수 없는 이들에게 든든한 우군이 되었으면 합니다.


 (가운데 저 청년은 백분토론 사회자인 손석희 교수입니다. 사진은 제가 보관중인 파일에서 가져왔습니다.)

 저는 제 근로조건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습니다. 그로부터 노동권에 대한 이야길 하고 싶었습니다. 그러다 어제 PD수첩에 오체투지하시는 분들을 보고 내내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리고 마감뉴스에 국가보안법 사건을 접했습니다. 제 머리 속은 이 다양한 권리들의 우선  순위를 정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게 아니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하루에 14시간을 하는 저의 노동시간을 단축하는 일과 일터로 돌아가기 위한 이들의 투쟁도 말도 안되는 사상검열과 불법적인 사찰을 당해야 하는 모든 이들의 권리는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블로그에 선뜻 글을 올리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분(?)이 용기를 주셨습니다. 그분 믿고 한번 가슴을 터놓고 고민을 나누었으면 합니다. 

몇일 전에 모 대기업에서 일하는 아는 형님에게 전화가 왔었습니다. 회사에서 부당노동행위를 당하셨고 이에 대한 자문을 하셨습니다. 여러분도 잘 아시겠지만 저는 그럴만한 능력도 없지만 이런 문제가 발생하면 쉽게 노무사든 노동조합이든 찾을 수 있는 우리사회가 아니라는 것을 절실히 느끼게 되었습니다. 부랴 부랴 아는 변호사의 도움과 노무사를 소개 시켜드리긴 했지만 역시 남는건 개인의 결단이었습니다. 회사랑 한바탕을 해야 하는 그 상황. 문제를 직면하고 그 문제를 정직히 바라보고 그 문제와 싸워야 할 그 순간 말이죠. 이 순간에 저는 아무런 도움도 드릴수가 없는데 말이죠. 오늘도 많은 사람들이 이 직면을 하고 있을 생각을 하면 가슴 한켠이 먹먹해 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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