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라크에 세워질 증오비를 생각하십시오 (2003.03.19 이라크 침공을 보며)
부시 미 대통령에게 보내는 편지
오늘 아침 당신은 기어이 전쟁을 일으키고 말겠다는 소식을 다시 한 번 전세계에 공표했습니다. 다른 많은 나라에서는 물론 당신네 나라 사람들조차 반대하는 명분없는 전쟁을 꼭 하겠다는 것이지요. 아마도 당신은 국제 사회의 최소한의 도덕조차 지키지 않은 패륜아의 명단에 오르게 될 것입니다.
당신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습니까. 당신을 보고 있노라면 옆자리의 사람과 기본적인 소통조차 할 수 없는 정신병 환자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합니다. 그러나 나는 인내심을 가지고 당신에게 말하려고 합니다. 인류가 전쟁이란 것을 통해 얻은 것이 무언인지, 전쟁이라는 것이 얼마나 인간을 불행하게 만들어 왔는지 당신에게 다시 한 번 증거들을 보여주려 합니다.
전쟁이란 탐욕과 야만의 얼굴이라고 배워왔습니다. 그러고보니 당신 역시 역시 탐욕과 야만의 노예가 된 듯 하군요. 저는 이 야만의 얼굴을 당신에게서만 발견한 것은 아닙니다. 우리 인류사에 재앙을 초래한 독재자의 얼굴들과 당신의 얼굴은 닮은꼴입니다. 로마의 네로, 이탈리아의 무솔리니, 독일의 히틀러의 얼굴 위로 당신의 얼굴이 겹쳐집니다. 당신은 이 살인마들의 탐욕과 야만을 고스란히 물려 받았기 때문입니다.
이제 제 이야길 하려고 합니다. 제 개인의 이야기가 전쟁을 막을 수 있다고 생각하진 않습니다. 오히려 전쟁의 광기에 놀아나고 있는 이 세상에 동화되지 않기 위한 스스로의 다짐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제 진심이 당신에게 전해지리라는 깊은 믿음으로 이 글을 시작하려 합니다.
베트남을 기억하십니까?
베트남이란 나라를 알고 계십니까? 어찌보면 당신이 기억조차 하기 싫은 나라일 수 있겠군요. 수퍼 울트라 초강대국이 패배를 경험한 땅이니까요. 저는 두 번에 걸쳐 베트남을 방문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한번은 베트남전에 참전했던 참전군인들과의 동행이었고, 다른 한번은 전쟁을 경험하지 못한 양국(베트남-한국)의 청년들이 만나는 자리였습니다.
처음 비행기 상공에서 내려다 본 베트남은 그야말로 끝을 알 수 없는 평야가 이어지는 들판이었습니다. 그리고 이내 이 평야는 제게 평화의 땅으로 다가왔습니다. 누굴 만나도 환한 미소로 대하는 베트남 사람들, 일상에 깊이 뿌리 박고 있는 여유로움과 너그러움은 이 땅에서 제가 발견한 것들이었습니다. 또한 아이들의 눈망울은 얼마나 순하고 아름답던지요. 이내 제 마음은 이 아름다운 땅 베트남에 모두 빼앗겨 버렸습니다. 하지만 그 아름다운 여운도 그리 오래가진 못했습니다. 그 땅엔 곳곳에 전쟁의 아픔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 낌따이 위령비에는 희생된 민간인의 이름과 함께 한국군 증오비라는 글귀가 적혀있다.
(사진제공 : 건치)
저희가 방문한 대부분의 베트남 시골 마을 입구에는 비석이 하나씩 서 있습니다. 그것은 다름 아닌 베트남전쟁 당시 죽어간 사람들을 위로하는 위령비였습니다. 그나마 위령비가 있는 마을은 다행이란 생각을 하게된 것은 증오비를 본 이후였습니다. 해방(베트남 사람들은 베트남전 종전을 해방이라 부르더군요) 직후에는 마을마다 증오비가 섰다고 합니다. 그 중의 한 증오비에는 이런 문구가 써있었습니다. '하늘에 가 닿을 죄악 만대를 기억하리라!' 아름다운 나라 베트남에는 이런 씻을 수 없는 상처와 아픔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상처를 준 가해자가 바로 당신의 나라 미국과 제가 살고 있는 땅 대한민국입니다.
회복되지 않는 상처
이야기가 무거워지는 것 같습니다. 재미난 이야기 하나 하겠습니다. 우리 일상을 보면 베트남은 가까운 나라입니다. 월남치마, 월남뽕, 월남스키부대, 월남에서 돌아온 새까만 김상사 까지… 한국사람들이 사용하는 일상의 언어에 월남이란 나라는 다른 어느 나라에 뒤지지 않을 만큼 가까운 나라입니다. 거기에 수업시간을 통해, 아버지를 통해 듣게 되는 베트남 전쟁 당시 '자유와 민주주의를 수호하기 위한' 한국군인의 용맹무쌍함까지 더한다면 베트남은 우리에게 아주 친숙한 나라지요. 그러나 그 용맹함과 친근함 이면에 숨어 있는 얼굴은 야만과 탐욕의 얼굴 곧 당신의 얼굴이었습니다.
처음에 말씀드린 것처럼 저는 두 번 베트남을 방문했습니다. 그 첫 번째는 참전군인들과의 동행이었습니다. 전쟁이 끝난지 30년의 세월이 넘었지만 그분들은 과거에 대한 죄책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또한 그 분들이 전쟁을 수행했던 바로 그 곳에 살고 있는 베트남 사람들 역시 과거의 고통이 아직 끝나지 않은 채였습니다. 30년이 넘었지만 피해자에게도 가해자에게도 전쟁은 계속 되고 있었습니다. 참전군인들은 베트남 사람들 앞에서 눈물로 용서를 빌었습니다. 다시는 이런 불행한 일이 일어나지 않아야 한다고 참전군인들은 젊은 세대인 우리에게 진심을 다해 이야기했습니다. 저는 전쟁의 얼굴을 다시 한번 봤습니다. 전쟁은 전쟁기간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두고두고 이어지는 정신적 외상, 무엇으로도 회복되어질 수 없는 영혼의 파괴를 동반하는 것이었습니다.
두 번째 방문은 양국 청년들과의 만남이었습니다. 베트남 전쟁 당시 한국군에 의해 전가족을 잃고 홀로 살아 계신 할머님의 무너져 가는 집을 지어드리고 마을 청년들과 만남의 자리를 갖는 시간도 마련했습니다. 과거사를 돌아보고 평화로운 미래를 만들기 위한 젊은이들의 노력이었습니다. 그러나 이 모든 노력에도 불구하고 할머니의 날아간 턱은 다시 재생되어질 수 없고, 품에서 산산조각이 난 손자의 모습은 여전히 할머니의 생을 어두운 터널 속에 가두어 놓으리라는 것 또한 우리는 압니다.
전쟁은 생명을 파괴하는 일
당신이 이 비극적인 일을 그만 둘 것을 기도하겠습니다. 전쟁은 그리 간단한 문제가 아닙니다. 당신이 편안한 집무실에서 보고 받는 그런 워게임(WAR GAME)이 아닙니다. 전쟁은 살아 있는 모든 것들에 대한 파괴행위입니다. 전쟁은 인간성을 말살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입니다. 그리고 전쟁은 어느 누구에게도 이로울 것 없는 인간이 할 수 있는 가장 잔혹한 행위입니다.
저는 올해 세 번째 베트남 방문을 계획하고 있습니다. 알고 계실지 모르겠지만 꽝남성 빈영 마을이라는 곳은 전쟁이 있기 이전엔 평화로운 농촌 마을이었습니다. 그곳에 당신의 군대와 대한민국의 군대가 가서 민간인을 학살했습니다. 그 날 죽은 사람들은 학살이 있은 지 30년이 넘도록 누울자리 하나 변변히 마련하지 못해 모래무지에 누워있습니다. 아무 것도 남김 없이 초토화 된 땅에서 살아남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만 했던 살아남은 사람들이 마련한 무덤자리는 초라하기 그지 없고, 마을 사람들은 늘 무덤을 잘 조성해야 한다는 소망을 부채처럼 안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저는 이곳에서 그 주검들 하나 하나의 이름을 부를 것입니다. 그래서 그 억울한 죽음의 사연들을 생생히 듣고 올 것입니다. 전쟁의 참혹함과 야만에 대해 그 분들보다 더 잘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분들이 편히 누울 수 있는 영혼의 집을 마련해 드리고 올 것입니다. 이 일은 불행했던 과거에 대한 반성과 전쟁의 얼굴을 마주하기 위함입니다. 남의 나라 전쟁에 참여하는 것이 얼마나 불행하고 끔직한 일인가를 똑똑히 보고 올 것입니다. 평화는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만들고 가꾸는 것임을 또한 배우고 올 것입니다.
이라크에 세워질 증오비
이제 마지막으로 당신에게 말합니다.
베트남 전쟁을 기억하기 바랍니다. 당신의 아버지가 행했던 명분 없는 전쟁에 대한 기억 또한 잊지 말길 바랍니다. 베트남 전쟁에 참여했던 미군들의 모습을 기억하기 바랍니다. 아무런 이유도 목적도 없이 남의 전쟁에 참여했던 이들이 겪어야 했던 모순과 갈등과 분노와 그 사이에서 저질러졌던 학살을 기억하기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아무것도 모르던 아이들의 죽음을 기억하기 바랍니다. 이제 마악 세상과 인사한 아이의 아름다운 눈동자를 향해 겨눈 그 총부리를 이제 거두기 바랍니다. 지금 당신이 쏘아올린 그 미사일이 언젠가 당신을 향해 겨누어질 것이라는 걸 기억하기 바랍니다.
30년 후 이라크에 세워질 증오비를 생각하십시오. 하늘에 가 닿을 죄악 만대를 기억하리라. 하지만 이 증오비는 아직 만들어지지 않았습니다. 전세계가 반대하는 이 전쟁은 당신을 파국으로 몰고갈 것입니다. 인간의 얼굴을 한 당신을 보고 싶습니다. 불안한 마음으로 이 밤을 지새울 이라크 아이들의 선한 눈망울을 기억하길 인간의 이름으로 당신에게 말합니다.
부시 미 대통령에게 보내는 편지
오늘 아침 당신은 기어이 전쟁을 일으키고 말겠다는 소식을 다시 한 번 전세계에 공표했습니다. 다른 많은 나라에서는 물론 당신네 나라 사람들조차 반대하는 명분없는 전쟁을 꼭 하겠다는 것이지요. 아마도 당신은 국제 사회의 최소한의 도덕조차 지키지 않은 패륜아의 명단에 오르게 될 것입니다.
당신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습니까. 당신을 보고 있노라면 옆자리의 사람과 기본적인 소통조차 할 수 없는 정신병 환자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합니다. 그러나 나는 인내심을 가지고 당신에게 말하려고 합니다. 인류가 전쟁이란 것을 통해 얻은 것이 무언인지, 전쟁이라는 것이 얼마나 인간을 불행하게 만들어 왔는지 당신에게 다시 한 번 증거들을 보여주려 합니다.
전쟁이란 탐욕과 야만의 얼굴이라고 배워왔습니다. 그러고보니 당신 역시 역시 탐욕과 야만의 노예가 된 듯 하군요. 저는 이 야만의 얼굴을 당신에게서만 발견한 것은 아닙니다. 우리 인류사에 재앙을 초래한 독재자의 얼굴들과 당신의 얼굴은 닮은꼴입니다. 로마의 네로, 이탈리아의 무솔리니, 독일의 히틀러의 얼굴 위로 당신의 얼굴이 겹쳐집니다. 당신은 이 살인마들의 탐욕과 야만을 고스란히 물려 받았기 때문입니다.
이제 제 이야길 하려고 합니다. 제 개인의 이야기가 전쟁을 막을 수 있다고 생각하진 않습니다. 오히려 전쟁의 광기에 놀아나고 있는 이 세상에 동화되지 않기 위한 스스로의 다짐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제 진심이 당신에게 전해지리라는 깊은 믿음으로 이 글을 시작하려 합니다.
베트남을 기억하십니까?
베트남이란 나라를 알고 계십니까? 어찌보면 당신이 기억조차 하기 싫은 나라일 수 있겠군요. 수퍼 울트라 초강대국이 패배를 경험한 땅이니까요. 저는 두 번에 걸쳐 베트남을 방문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한번은 베트남전에 참전했던 참전군인들과의 동행이었고, 다른 한번은 전쟁을 경험하지 못한 양국(베트남-한국)의 청년들이 만나는 자리였습니다.
처음 비행기 상공에서 내려다 본 베트남은 그야말로 끝을 알 수 없는 평야가 이어지는 들판이었습니다. 그리고 이내 이 평야는 제게 평화의 땅으로 다가왔습니다. 누굴 만나도 환한 미소로 대하는 베트남 사람들, 일상에 깊이 뿌리 박고 있는 여유로움과 너그러움은 이 땅에서 제가 발견한 것들이었습니다. 또한 아이들의 눈망울은 얼마나 순하고 아름답던지요. 이내 제 마음은 이 아름다운 땅 베트남에 모두 빼앗겨 버렸습니다. 하지만 그 아름다운 여운도 그리 오래가진 못했습니다. 그 땅엔 곳곳에 전쟁의 아픔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사진제공 : 건치)
저희가 방문한 대부분의 베트남 시골 마을 입구에는 비석이 하나씩 서 있습니다. 그것은 다름 아닌 베트남전쟁 당시 죽어간 사람들을 위로하는 위령비였습니다. 그나마 위령비가 있는 마을은 다행이란 생각을 하게된 것은 증오비를 본 이후였습니다. 해방(베트남 사람들은 베트남전 종전을 해방이라 부르더군요) 직후에는 마을마다 증오비가 섰다고 합니다. 그 중의 한 증오비에는 이런 문구가 써있었습니다. '하늘에 가 닿을 죄악 만대를 기억하리라!' 아름다운 나라 베트남에는 이런 씻을 수 없는 상처와 아픔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상처를 준 가해자가 바로 당신의 나라 미국과 제가 살고 있는 땅 대한민국입니다.
회복되지 않는 상처
이야기가 무거워지는 것 같습니다. 재미난 이야기 하나 하겠습니다. 우리 일상을 보면 베트남은 가까운 나라입니다. 월남치마, 월남뽕, 월남스키부대, 월남에서 돌아온 새까만 김상사 까지… 한국사람들이 사용하는 일상의 언어에 월남이란 나라는 다른 어느 나라에 뒤지지 않을 만큼 가까운 나라입니다. 거기에 수업시간을 통해, 아버지를 통해 듣게 되는 베트남 전쟁 당시 '자유와 민주주의를 수호하기 위한' 한국군인의 용맹무쌍함까지 더한다면 베트남은 우리에게 아주 친숙한 나라지요. 그러나 그 용맹함과 친근함 이면에 숨어 있는 얼굴은 야만과 탐욕의 얼굴 곧 당신의 얼굴이었습니다.
처음에 말씀드린 것처럼 저는 두 번 베트남을 방문했습니다. 그 첫 번째는 참전군인들과의 동행이었습니다. 전쟁이 끝난지 30년의 세월이 넘었지만 그분들은 과거에 대한 죄책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또한 그 분들이 전쟁을 수행했던 바로 그 곳에 살고 있는 베트남 사람들 역시 과거의 고통이 아직 끝나지 않은 채였습니다. 30년이 넘었지만 피해자에게도 가해자에게도 전쟁은 계속 되고 있었습니다. 참전군인들은 베트남 사람들 앞에서 눈물로 용서를 빌었습니다. 다시는 이런 불행한 일이 일어나지 않아야 한다고 참전군인들은 젊은 세대인 우리에게 진심을 다해 이야기했습니다. 저는 전쟁의 얼굴을 다시 한번 봤습니다. 전쟁은 전쟁기간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두고두고 이어지는 정신적 외상, 무엇으로도 회복되어질 수 없는 영혼의 파괴를 동반하는 것이었습니다.
두 번째 방문은 양국 청년들과의 만남이었습니다. 베트남 전쟁 당시 한국군에 의해 전가족을 잃고 홀로 살아 계신 할머님의 무너져 가는 집을 지어드리고 마을 청년들과 만남의 자리를 갖는 시간도 마련했습니다. 과거사를 돌아보고 평화로운 미래를 만들기 위한 젊은이들의 노력이었습니다. 그러나 이 모든 노력에도 불구하고 할머니의 날아간 턱은 다시 재생되어질 수 없고, 품에서 산산조각이 난 손자의 모습은 여전히 할머니의 생을 어두운 터널 속에 가두어 놓으리라는 것 또한 우리는 압니다.
전쟁은 생명을 파괴하는 일
당신이 이 비극적인 일을 그만 둘 것을 기도하겠습니다. 전쟁은 그리 간단한 문제가 아닙니다. 당신이 편안한 집무실에서 보고 받는 그런 워게임(WAR GAME)이 아닙니다. 전쟁은 살아 있는 모든 것들에 대한 파괴행위입니다. 전쟁은 인간성을 말살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입니다. 그리고 전쟁은 어느 누구에게도 이로울 것 없는 인간이 할 수 있는 가장 잔혹한 행위입니다.
저는 올해 세 번째 베트남 방문을 계획하고 있습니다. 알고 계실지 모르겠지만 꽝남성 빈영 마을이라는 곳은 전쟁이 있기 이전엔 평화로운 농촌 마을이었습니다. 그곳에 당신의 군대와 대한민국의 군대가 가서 민간인을 학살했습니다. 그 날 죽은 사람들은 학살이 있은 지 30년이 넘도록 누울자리 하나 변변히 마련하지 못해 모래무지에 누워있습니다. 아무 것도 남김 없이 초토화 된 땅에서 살아남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만 했던 살아남은 사람들이 마련한 무덤자리는 초라하기 그지 없고, 마을 사람들은 늘 무덤을 잘 조성해야 한다는 소망을 부채처럼 안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저는 이곳에서 그 주검들 하나 하나의 이름을 부를 것입니다. 그래서 그 억울한 죽음의 사연들을 생생히 듣고 올 것입니다. 전쟁의 참혹함과 야만에 대해 그 분들보다 더 잘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분들이 편히 누울 수 있는 영혼의 집을 마련해 드리고 올 것입니다. 이 일은 불행했던 과거에 대한 반성과 전쟁의 얼굴을 마주하기 위함입니다. 남의 나라 전쟁에 참여하는 것이 얼마나 불행하고 끔직한 일인가를 똑똑히 보고 올 것입니다. 평화는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만들고 가꾸는 것임을 또한 배우고 올 것입니다.
이라크에 세워질 증오비
이제 마지막으로 당신에게 말합니다.
베트남 전쟁을 기억하기 바랍니다. 당신의 아버지가 행했던 명분 없는 전쟁에 대한 기억 또한 잊지 말길 바랍니다. 베트남 전쟁에 참여했던 미군들의 모습을 기억하기 바랍니다. 아무런 이유도 목적도 없이 남의 전쟁에 참여했던 이들이 겪어야 했던 모순과 갈등과 분노와 그 사이에서 저질러졌던 학살을 기억하기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아무것도 모르던 아이들의 죽음을 기억하기 바랍니다. 이제 마악 세상과 인사한 아이의 아름다운 눈동자를 향해 겨눈 그 총부리를 이제 거두기 바랍니다. 지금 당신이 쏘아올린 그 미사일이 언젠가 당신을 향해 겨누어질 것이라는 걸 기억하기 바랍니다.
30년 후 이라크에 세워질 증오비를 생각하십시오. 하늘에 가 닿을 죄악 만대를 기억하리라. 하지만 이 증오비는 아직 만들어지지 않았습니다. 전세계가 반대하는 이 전쟁은 당신을 파국으로 몰고갈 것입니다. 인간의 얼굴을 한 당신을 보고 싶습니다. 불안한 마음으로 이 밤을 지새울 이라크 아이들의 선한 눈망울을 기억하길 인간의 이름으로 당신에게 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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